← 악당의 아버지로 빙의했습니다알람이 울린 지 삼십 초쯤 지났을 때, 박준호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5시 47분. 정확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깬다. 뇌가 시계처럼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살아있다는 확인. 매일 반복되는 의식처럼 느껴졌지만, 여전히 필요했다.
침대 옆 스탠드를 켰다. 아파트는 조용했다. 시우가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다. 아침 일곱 시까지는 깨워도 된다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이은미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정한 것이었다. *아이 스케줄은 일관성 있게.* 전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죽기 전의 박준호는 그냥 아이를 내버려뒀다.
욕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봤다. 48세. 더 이상 젊지 않은 얼굴이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미래에서 돌아온 지 3개월. 이 얼굴이 언제쯤 익숙해질까.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아침 샤워는 나중에.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6시 30분까지 아이를 깨우고, 6시 45분까지 아침을 먹이고, 7시 20분까지 학용품 확인을 마쳐야 했다. 아이 등교가 7시 30분. 자신의 출근은 8시.
침실로 돌아갔다. 검은 정장 바지, 흰 셔츠. 회사원의 제복이었다. 넥타이는? 넥타이를 맬까, 말까. 화요일이니까 매무새를 덜 신경 써도 될 텐데... 아니다. 일관성. 매일 같은 수준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거실 불을 켰다. 부엌 테이블에는 어제 밤 준비한 것들이 있었다. 시우의 도시락 밑반찬들. 계란말이, 콩자반, 브로콜리. 전자레인지에만 데우면 된다. 효율적이었다.
복도를 따라 시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쪽 발이 튀어나와 있었고, 입에서 조용한 숨소리가 나왔다. 어린 얼굴이었다. 여전히. 그런데...
박준호는 아이의 손을 봤다. 손가락 끝이 살짝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잉크? 아니다. 잉크는 이렇게 물들지 않는다. 손톱 아래까지 검은색이 스며 있었다. 어두운 정도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미래에서 본 그 모습이 떠올랐다. 18세의 박시우. 까만 아우라가 온몸을 감싸던 그 모습. 검은 빛이 눈까지 가득 찬 그 표정.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닌 그것.
손을 거둬뒀다.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시우. 일어나자."
목소리를 낮췄다. 어른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관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라는 것을.
아이가 움직였다. 신음을 내며 이불을 더 끌어당겼다.
"학교 가야 해."
"...싫어요."
처음 내뱉은 말이 그것이었다. 시우의 목소리는 아직 맑았다. 하지만 뭔가 다른 톤이 섞여 있었다. 낮고, 무거운 음역대가. 마치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것 같은.
박준호는 침대 옆에 앉았다. 천천히.
"왜 싫어?"
"그냥... 싫어요."
시우가 눈을 떴다. 아직 졸린 눈. 하지만 그 안에 뭔가 흔들리는 것 같은 게 있었다. 마치 연기처럼. 가늘고 검은 연기가 눈동자를 휘감으며 흐르고 있었다.
아, 이미 시작됐구나.
"학교에 가야 어쨌든 가야지. 일어나."
"...아빠."
시우가 손을 뻗었다. 그 검은 손가락이 박준호의 팔을 만졌다. 차가웠다. 한여름인데 그 손가락은 겨울 같았다.
"뭐야?"
"아빠는... 날 좋아해?"
질문이 갑자기 나왔다. 아침 6시 20분. 시간표에 없던 질문.
박준호는 아이의 손을 봤다. 검은 손가락들이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었다. 부드럽게. 하지만 그 손에서 나오는 온도는 거짓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기계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게 최선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음. 시우는 손을 거둬뒀다.
화면에는 '이은미'라는 이름이 떴다. 7시도 아닌데. 전처가 이 시간에 전화를 거는 건 드물었다.
"엄마가 전화했어?"
시우가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맑아진 눈.
"엄마!"
"먼저 일어나. 엄마한테 전화 받고."
박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준호? 시우가 있어?"
이은미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평소와 다른 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네,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어제 시우가... 좀 이상했거든."
박준호는 아이를 봤다. 시우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엄마 목소리를 들으려고 박준호 옆에 서 있었다. 또 다시 일반적인 10세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검은색은 여전했다.
"뭐가요?"
"음... 어제 저한테 그려준 그림 봤어? 시우가 그린 그림."
박준호는 모른다고 했다. 이은미가 그림을 설명했다. 시우가 어제 엄마 집에서 그려준 그림. 검은 색연필로만 칠한, 도시의 모습. 하지만 건물들이 모두 부서져 있고, 하늘이 검게 물들어 있는 그림. 그리고 중앙에 한 사람이 선 모습.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아우라처럼 검은 빛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 조금... 어둡지 않았어요?"
이은미의 목소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모친의 직감. 뭔가 아이에게서 뭔가를 감지한 것이다.
박준호는 시우를 봤다. 아이가 엄마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아... 그냥 상상력이 풍부한 거겠죠."
거짓말이 얼굴에서 흘렀다. 이은미는 침묵했다. 전화선 너머에서 그녀가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준호, 시우 정신 상태 괜찮아? 학교는 잘 다니고?"
"네,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네."
또 다른 거짓. 박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미래에서 이미 봤다. 이 지점에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는 걸. 아이가 변하기 시작하는 이 순간부터. 그리고 자신이 그걸 막지 못한다는 것도.
"시우한테 줄게 있어. 아빠한테 전해줄래?"
"네."
"일요일날 엄마 집에 와. 둘이서만. 우리 좀 얘기해야 할 것 같아."
통화가 끝났다.
박준호는 시우를 봤다.
"엄마가 일요일에 보고 싶대."
시우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검은색이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알았어요, 아빠."
아이의 목소리에 두 개의 음역대가 명확히 들렸다. 이제 더 이상 섞여 있지 않았다.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시우의 목소리고, 하나는 그렇지 않은 것.
박준호는 일어났다.
"밥 먹고 학교 가."
"네."
시우가 따라왔다. 손가락은 여전히 검었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박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엑셀 시트 위로 눈을 굴리고 있을 때, 어깨가 스쳐갔다.
최도현이었다.
"준호."
목소리가 가볍고 무심했다. 박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상사는 이미 지나가는 중이었다. 회의실 방향으로. 뒷모습만 보였다.
"분기 보고서 이번 주 안에."
그것이 전부였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한 것. 마치 공기에 던져놓은 명령처럼.
박준호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세 달 전 미래에서 돌아온 이후로, 박준호는 최도현을 여러 번 봤다. 아니, 여러 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봤다. 그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언제 변하는지를.
최도현은 '시스템'이 도래하면서 가장 먼저 적응한 인간 중 한 명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적응한 게 아니라 그것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인 인간이었다. 3년 뒤 그는 이 회사의 실권자가 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사였지만, 실제로는 회장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그리고 박준호는 그 과정에서 철저히 밀려난다. 최적화 능력이 있어도, 회귀 지식이 있어도, 최도현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미래에서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준호는 분기 보고서 폴더를 열었다. 이미 60% 정도 완성되어 있었다. 어제 밤샘 때문이다. 시우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서 새벽 3시까지 작업했다. 이제 4시간만 더 있으면 끝난다.
"어? 준호?"
강민준이 나타났다.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얹었다.
"뭐 하냐?"
"분기 보고서."
"아, 그거? 넌 왜 이렇게 일만 많아? 도현이가 자꾸 시키나?"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랑스러운 웃음이었다.
"야, 근데 나 차 봤어? 나 어제 계약했어. BMW. 펀 드라이브 패키지까지."
"축하한다."
"응? 그게 뭐하는 말이야? 함께 기뻐해야지. 야, 이제 회사 다니는 게 좀 쉬워졌어. 시스템 등급이 올라가니까 몸이 한결 가벼워. 넌 아직 F등급이지? 아, 맞다. 넌 아직 각성도 안 했지?"
박준호는 계속 타자를 쳤다.
강민준은 계속했다.
"진짜, 회귀하지 말 걸. 미래는 원래 이런 거야. 약자는 빨리 정해진다고. 넌 이미 정해진 것 같은데? 평사원으로."
그 말은 정확했다. 미래에서 박준호는 평사원으로 남아 있었다. 최도현의 그림자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것도 벗겨진다. 시우의 변화와 함께.
"그런데 정말 차는 좋더라. 엔진음이. 넌 언제 타 봤어? BMW."
"없다."
"역시. 넌 그런 게 없지. 뭐, 처자식만 챙기고 살기도 바쁠 거고."
박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0.3초.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강민준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 아니다. 눈치채도 상관없다. 이미 시스템이 도래한 미래에서, 강민준은 박준호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디 생각 중이야? 차 말이야. 너도 사야 하지 않아? 요즘 같은 세상에 나발 치고 다니면 어때?"
박준호는 타자를 다시 시작했다.
"아직."
"아직이 뭐야. 이제 시스템이 일상화되는 시점이야. 너도 빨리 등급 올려야지. 안 그러면 정말 낙오돼. 그냥 말이야, 나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 말은 거짓이었다. 강민준은 박준호를 위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말하는 것이었다. 박준호는 이미 미래에서 봤다. 강민준이 최도현의 오른팔이 되어가는 과정을 .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무릎을 꿇는지를.
"알겠다."
박준호가 대답했다.
강민준은 그제야 책상에서 일어났다.
"뭐, 나중에 태워줄 때 생각나. 차 타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는 가면서 쩌렁거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주변 팀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쌕 같은 세상이야. 약자는 그냥 밟히고 사는 거지."
박준호는 모니터만 봤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차가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계산 같은 것. 최도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강민준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아니, 돌릴 필요가 있나. 미래에서 이미 결정된 일들인데.
그런데 시우는?
시우의 손가락이 검어지는 것은 이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박준호는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췄다. 다시. 0.3초. 이번엔 더 길었다. 0.7초.
분기 보고서의 그래프가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들어온 것은 일요일이었다. 이은미가 "줄 것"이 있다고 한 일요일.
그리고 시우의 목소리에 들었던 그 두 개의 음역대.
박준호는 다시 타자를 쳤다.
이번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멈추면 안 된다. 멈추는 순간 그 과거가 따라온다. 그 미래가. 시우가 18살이 되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걷는 그 모습이.
엑셀 셀 위로 숫자들이 차곡차곡 들어찼다.
하지만 박준호의 눈은 화면에 있지 않았다.
일요일을 보고 있었다. 그 날이 가져올 것들을. 이은미가 "줄 것"이라고 한 그것이. 시우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그리고 자신이, 이번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외부 창을 통해 서울의 회색 빌딩들이 보였다. 맑은 날씨였다. 하지만 박준호는 그곳에 검은 것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시우의 손가락처럼. 시우의 눈처럼.
"분기 보고서, 이번 주 안에."
최도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박준호는 엔터 키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