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제생, 마법학교 수석을 노리다# 직업배정실
직업배정실은 학원 중앙탑의 12층이었다. 창밖으로는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하늘은 회색이었다. 항상 회색이었다. 린은 그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신입생 150명이 복도에 줄을 서 있었다. 마력 순위대로. 0.3% 린은 맨 뒤였다.
"다음!"
배정실 내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여성의 목소리. 늙었지만 날카로운.
신입생들이 차례대로 들어갔다. 들어간 지 2분에서 5분 사이에 나왔다. 각자 배지를 들고. 빛나는 배지. 자신의 직업을 나타내는.
"전투사."
"건축가."
"의료사."
"마법사."
"연금술사."
소리가 배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신입생이 나왔다. 배지를 들고. 항상 같은 방식으로.
린은 줄을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카일은 30분 전에 배정을 받았다. "기술자(Artificer)". 기계와 마력을 조합하는 직업. 꽤 희귀한 편이었다. 카일은 배지를 들었을 때 얼굴이 밝아졌다. 린은 그것을 옆에서 봤다. 그 순간 카일이 배지를 들었을 때 방의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배정실의 마력 센서가 카일의 기쁨에 반응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린은 확률을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145번!"
그것이 린이었다.
복도의 신입생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대부분 마력이 낮은 학생들이었다. 0.5% 이하.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체념이 묻어 있었다. 직업배정은 마력으로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낮은 마력 → 낮은 직업 등급. 이것이 규칙이었다.
린은 직업배정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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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실 내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책상 하나. 그 뒤에 할머니 같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깊었다. 마력 맥동계(魔力脈動計)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 검정색. 표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대."
할머니가 말했다. 눈도 들지 않았다.
린이 손을 맥동계 위에 얹었다.
기계가 울렸다. 아주 작은 음. 핑. 그리고 표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마력 0.3% 확인]
할머니의 눈이 올라왔다.
"이상하네."
"뭐가요?"
"기계가 떨었어. 아주 미세하게. 0.3% 따위에서는 반응하지 않는데."
할머니의 손가락이 맥동계를 톡톡 두드렸다.
"고장인가?"
"아니에요."
린이 말했다. 단호하게.
할머니가 다시 린을 봤다. 이번엔 눈이 조금 달랐다. 모란 교수와는 다른 종류의 관심. 더 실용적인 관심. 마치 낡은 책을 펼쳤을 때, 예상 밖의 문구를 발견했을 때의 그런 관심.
"직업 배정 절차는 세 단계야. 첫째, 마력 측정. 둘째, 재능 검사. 셋째, 최종 확인."
할머니가 말했다.
"넌 첫 번째에서 걸렸어. 마력이 너무 낮아. 보통은 여기서 바로 '노동자' 직업이 나와. 그리고 끝. 다음 사람."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기계가 반응했어. 그것도 떨렸어. 그건 처음이야. 내 30년 경력에서."
할머니가 일어섰다. 키는 작았지만 움직임은 날카로웠다. 그녀가 린의 앞으로 걸어왔다. 손을 들어서 린의 얼굴을 관찰했다. 마치 보석을 감정하듯이.
"눈이 이상해."
"자주 듣는 말입니다."
"빛을 먹는 눈. 좋아. 그럼 재능 검사로 가자."
할머니가 책상 옆의 금고를 열었다. 금고에서 나온 것은 책이었다. 검은 책. 표지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할머니가 책을 린 앞에 놓았다.
"이 책을 봐. 뭐가 보여?"
린이 책을 봤다.
페이지를 펼쳤을 때,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어도, 영어도, 어떤 언어도 아니었다. 기호였다. 패턴이었다. 상징(象徵)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린의 신체 온도가 올라갔다. 왼쪽 팔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린은 숨을 쉬었다. 천천히. 그리고 읽었다.
"기록. 보존. 증언. 그리고 변화."
할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정확해. 완벽하게."
할머니가 책을 덮었다.
"이 책은 직업 검사용이야. 각 직업에 해당하는 사람만 그 페이지의 의미를 읽을 수 있어. 너는 '기록자'의 페이지를 읽었어."
린의 심장이 멈췄다.
"기록자?"
"그래. 상당히 드문 직업이야. 마력이 높은 사람들도 이 직업이 배정되지 않아. 왜냐하면 이건 마력으로 하는 일이 아니거든."
할머니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그 손에서 배지가 나타났다. 다른 배지들과는 달랐다. 다른 직업의 배지들은 모두 빛을 반사했다.
이 배지는 빛을 흡수했다.
검은색이었고, 그 위에 손가락 모양의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뻗은 손가락. 아주 간단한 선으로 그려진.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작은 점들이 있었다.
마치 별처럼.
"기록자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야. 교수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왜냐하면 이 직업은 마력으로 싸우지 않기 때문이야. 대신 본다. 읽는다. 기억한다. 그리고 기록한다."
할머니가 배지를 린에게 건넸다.
"넌 모든 것을 봐야 해. 이 학원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것을 기록해야 해.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것을 읽을 거야."
린이 배지를 손에 들었다.
배지가 따뜻했다. 자신의 체온과 비슷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한 가지 더 말해줄 게 있어."
할머니가 말했다.
"기록자는 혼자야. 항상. 그리고 그것이 너의 힘이 될 거야."
린이 배지를 바라봤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작은 점들이. 별처럼. 마치 우주처럼.
"가. 그리고 기억해. 넌 보는 자야. 기록하는 자야. 그것이 넌 누구인지를."
린이 배정실을 나왔을 때, 복도의 나머지 신입생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카일만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오래 걸렸네."
카일이 말했다. 그의 눈이 린의 배지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카일의 얼굴이 변했다. 미세한 두려움. 그리고 뭔가 더 깊은 것.
"그게... 뭐야?"
린은 배지를 들어올렸다. 검은색. 뻗은 손가락. 그 안의 무수한 별들.
"내 직업이야."
"직업 이름은?"
"기록자."
카일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기록자... 들어본 적이 없어."
"나도."
린이 말했다.
그리고 배지를 목에 걸었다. 배지가 맞닿은 순간, 린의 신체 온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왼쪽 팔의 뜨거움이 사라졌다. 대신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깨어났다.
오래된 것.
매우 오래된 것.
"린."
카일이 말했다.
"너 정말... 뭐야?"
린이 카일을 봤다.
그 순간, 배지가 한 번 빛났다. 검은색이었지만, 그 안에서 분명히 빛났다.
"아직은 모르겠어."
린이 말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을 것 같아."
복도의 형광등이 모두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 두 신입생의 그림자는 이전과 달랐다.
그림자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직업배정실 입구에서 세라 발렌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린은 세라의 왼손이 스커트의 주름을 몇 번이나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는 것을 봤다. 귀족 가정 출신의 완벽한 자태 속에서도 기대감은 숨을 수 없었다.
"린."
세라가 목청을 높였다. 그것은 인사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다. 마치 존재의 확인처럼.
"배정받았어?"
린이 배지를 들어 보였다.
세라의 눈이 좁혀졌다. 검은색. 그 안의 별들. 뻗은 손가락. 그녀는 직업 배지의 모양이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을 즉시 감지했다.
"기록자?"
"응."
"들어본 적 없는데."
세라의 목소리에는 의문보다 확신이 담겨 있었다. 99% 마력을 가진 자의 확신. 세상의 모든 것은 그녀의 학습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확신.
"나도."
린이 대답했다.
세라는 린의 얼굴을 2초간 관찰했다. 그 동안 그녀의 뇌는 이미 여러 가정을 세웠을 것이다. 희귀 직업인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측정 오류인가. 배정관의 실수인가.
하지만 직업배정실의 문이 열렸다.
"발렌, 세라."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라가 한 번 더 린을 보고는 직업배정실로 들어갔다. 그 뒤로 린과 카일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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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배정실 내부는 여전히 차가웠다. 기계는 여전히 기계였고, 책장은 여전히 책장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배정관의 얼굴에는 무언가 흐르고 있었다.
세라를 보는 그녀의 눈은 달랐다.
존경.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손을."
할머니가 말했다.
세라는 주저 없이 손을 기계에 올렸다. 몸의 움직임이 깔끔했다. 헛된 동작이 없었다. 이것이 99%의 몸이다. 신경 하나하나가 최적화된 육체.
기계가 울렸다.
[마력 측정값: 99.8%]
[검증 중...]
[직업 결정: Mage(마법사)]
선정 음성이 울리는 순간, 직업배정실 전체가 반응했다.
형광등이 파란색으로 깜빡였다.
책장의 책들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책장의 가장 오른쪽 끝. 린이 '기록자'를 읽었던 그 자리의 책이 한 번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세라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배지를 받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금색 배지였다. 그것도 정말 금색이었다. 순금처럼 빛나는 금색. 그 안에는 불꽃이 새겨져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눈 하나가 있었다. 수직으로 길게 뜬 눈.
세라가 배지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직업배정실 전체가 온난해졌다.
아니, 온난해진 게 아니라 뜨거워졌다.
카일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린은 그 온도를 감지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왼팔에서 흘러나왔던 그 열과는 다르다. 이것은 외부에서 발원하는 것이었다. 세라의 배지에서.
"마법사."
할머니가 말했다.
"99.8%. 매우 우수한 측정값이야. 넌 직업 특화 수업을 받을 자격이 있다."
세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기쁨의 미소가 아니었다. 확인의 미소였다. 예상대로였다는 확인.
"기록자와는 다르네."
세라가 말했다.
린을 보면서.
"응."
린이 대답했다.
"마법은 마력이 필요해."
"기록자는 관찰이 필요해."
세라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진정한 웃음이었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웃음.
"관찰. 재미있는데."
세라가 배지를 목에 걸었다.
배지가 피부에 닿자, 그녀의 눈이 변했다.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그리고 확대했다.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와."
세라가 속삭였다.
"이게... 마법사면 이 정도면..."
"충분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미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지금 뭘 느껴?"
할머니가 린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린이 대답했다.
"처음이라서."
"그럴 것 같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자는 말이야, 린. 단순히 본다는 뜻이 아니야. 기억한다는 뜻도 아니고. 넌 '이해'하는 거야. 본 것을 즉시 이해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거지."
린이 할머니를 봤다.
"뭘 기록하는 건데요?"
"모든 것."
할머니가 말했다.
"이 학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 마법, 검술, 사냥꾼들의 출현, 시스템의 변화.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고, 기억해야 해."
"왜요?"
"왜냐하면 세상이 곧 바뀔 거거든."
할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도 들었다.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린이 물었다.
"아직은 몰라도 괜찮아. 곧 알게 될 테니까."
할머니가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직업배정실의 가장 위쪽 선반에 손을 뻗었다. 린과 세라의 눈이 따라갔다.
할머니의 손이 닿은 곳에는 책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회색의. 먼지가 수백 년 쌓인 것 같은. 그것이 정확히 뭔지는 거리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곧이야."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곧 모든 게 시작돼."
직업배정실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 할머니의 그림자는 세 개였다.
아니.
네 개였다.
네 번째 그림자는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