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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균열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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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 아침 햇빛이 사무실 창을 통해 흘러들었다. 이준혁은 엑셀 스프레드시트의 수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준혁, 회의자료 정리했어?" 한지은이 옆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복잡한 재무표가 떠 있었다. 검은색 안경이 형광등 빛을 반사했다. "어제 다 했어." 준혁은 마우스를 움직였다. 클릭. 클릭. 생각 없는 동작이었다. 회계팀에서 5년. 급여는 올랐지만 뭔가 중요한 건 빠진 것 같은 느낌. 그런 식의 무언(無言).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멈췄다. 정확히는 멈춘 게 아니었다. 시간이 어두워졌다. 회색 필터가 현실에 덮였다. 한지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영화를 1초마다 스킵하는 것처럼 끊겼다. 그리고— **[시스템 도입 완료]** **[초기 스캔 중...]** 글자였다. 투명한 파란 글자가 공중에 떠 있었다. 준혁만 볼 수 있는 글자였다. 손을 뻗어도 손가락이 통과했다. **[능력 감지...]** **[능력 분석...]** **[결과: F급 '기록자(Recorder)'로 분류]** 펑. 세상이 다시 움직였다. 한지은의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어? 준혁, 뭐 해? 얼굴이..." 그녀는 말을 멈췄다. 준혁의 표정을 본 것이다. 준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몸 안의 뭔가가 깨어나고 있는 느낌. 마치 오랫동안 잠든 신경이 자극되는 것처럼. "뭐... 뭐야?" 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 앞이 비었다. 사무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100명의 직원들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화면에는: **[전 세계 동시 각성 이벤트 발생]** **[인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당신의 능력을 확인하세요]** --- 3일 후. 최민재는 이미 A급 '길드마스터'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는 더 이상 회사의 회의실이 아니었다. 길드본부의 회장실이었다. 벽면 전체가 모니터였다. 실시간 던전 정보, 능력자 데이터, 자금 흐름. 준혁 앞에 놓인 종이는 한 장이었다. **[F급 기록자 - 이준혁]** **[능력: 주변 환경의 정보를 텍스트로 변환 및 저장]** **[평가: 전투능력 없음, 보조직 추천]** "F급이면 충분해. 일단 길드에 들어와." 최민재의 목소리는 낮았다. 예의 바른 톤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 안의 거리감을 들었다. 전생의 친구는 벌써 사라졌다. A급이라는 등급이 그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놨다. "급여는?" "F급은 월 200만 원. 던전 지원비 별도." "그게 다?" 최민재는 미소를 지었다. "준혁, 너 현실 봐. F급이 200만 원을 버는 게 행운이야. 대부분은 일자리도 못 찾아. 길드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준혁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최민재의 말은 논리적으로 맞다.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혁의 뇌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건 이상하다.* *A급과 F급의 급여 차이가 이 정도일 리 없다.* *그리고 E급도 있어야 하는데...* --- 한지은은 E급이었다. "분석가(Analyst)"라는 능력. 대상의 약점과 강점을 수치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시장에서 매우 유용한 능력이었다. 이미 3개 길드가 그녀를 영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준혁을 찾아왔다. 사무실은 벌써 텅 비어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은 각성자 아니면 실직자였다. 준혁은 여전히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다. "너도 받았어? 제안서?" 한지은이 물었다. "3개." "나도. 다 거절했어." 준혁은 고개를 들었다. "왜?" "너가 F급이니까." 그 말은 단순했다. 감정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지은은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으로 결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E급과 F급이 함께 하면 시너지가 있을 거 같아." "그럴 리 없지." "맞아.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돼. 하지만..." 한지은은 자신의 손을 펼쳤다. 손가락 끝에서 연한 초록색 빛이 흘렀다. 마치 데이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뭔가 너한테 이상한 게 있어. 분석가 능력으로 봐도 계산이 안 돼. 너는 F급인데 A급 기운이 섞여 있어. 시스템이 놓친 게 있는 건 가?" 준혁의 몸이 굳었다. 그 순간,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어두운 던전. 붉은 피. 그리고— *최민재의 칼이 자신을 꿰뚫는 느낌.* 준혁은 책상을 쥐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준혁?" 한지은이 다가왔다. "괜찮아?" 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변했다. 그동안 본 적 없는 색깔이었다. 냉철함. 계산력. 그리고 깊은 불신. "한지은." "응?" "너만 믿을 거야." 말은 낮았다. 하지만 확실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한지은은 자신의 분석 능력을 가동시켰다. 눈 앞에 준혁의 정보가 떠올랐다. **[이준혁]** **[표면 등급: F급]** **[실제 능력: ???]** **[위험도: ???]** **[신뢰도: 초록색]** 초록색. 그것은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초록색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무언가 더 큰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뭘 해야 해?" 한지은이 물었다. 준혁은 모니터를 켰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빠르게. 정확하게.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록하는 것처럼. **[최민재의 자산 이동 추적]** **[의심거래 1: 던전 B등급 보상금 2배 횡령]** **[의심거래 2: E급 이상 능력자 독점 계약서...]** "뭐 하는 거야?" "시스템의 모순을 찾는 거야." 준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한지은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준혁의 몸을 차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F급이 이런 걸 할 수 있어?" "F급 기록자는 본 것을 기록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준혁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미 본 것들을 알고 있어." 한지은의 등이 서늘해졌다. 분석가의 직관이 울렸다. 이 사람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한 번 살았던 사람이다. # 던전 입구 던전 게이트는 회색 콘크리트 위에서 불규칙한 검은색으로 흔들렸다. 준혁은 그것을 바라봤다. 아무 감정도 없이. 마치 하나의 데이터를 읽는 것처럼. "처음인가?" 한지은이 옆에서 물었다. 그녀의 음성 분석 장비는 이미 던전의 마나 농도를 측정 중이었다. 숫자들이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떠올랐다. "응." 준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다. 칼이 갈비뼈를 관통하는 감각만 선명하다. "마나 농도 3.2. B급 던전 치고는 낮은 편이야." 한지은은 이미 데이터를 기록 중이었다. 그녀의 분석가 능력은 수치를 읽고, 패턴을 찾고, 모순을 발견한다. 준혁과는 다른 방식으로. "최민재는?" "뒤에서 온다고 했어.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몬스터 상황을 파악하고." 준혁은 던전 입구에 한 발을 들었다. 진입 순간, 세상이 반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현실. 회색 콘크리트, 한지은의 숨소리, 멀리서 들리는 도시 소음. 다른 한쪽은— **[던전 내부 인식 시작]** **[마나 농도: 3.2%]** **[예상 몬스터 등급: C ~ D급]** **[던전 깊이: 약 200m]** **[권장 파티 구성: 4인 이상]** 글자들이 준혁의 시야에 겹쳐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 알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뇌에서 생성되는 정보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록하듯이. "준혁? 괜찮아?" 한지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현실과 연결된 유일한 줄. "응. 괜찮아." 그는 걸어 들어갔다. 던전 내부는 생각보다 협소했다. 천장은 자연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벽은 초록색 이끼로 덮여 있었다. 공기는 습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생명 반응 감지: 동쪽 약 50m]** **[예상 몬스터 종류: 암벽도마뱀(C급)]** 준혁은 멈췄다. "뭐야?" "몬스터가 있어. 동쪽." "어떻게 알아?" 그는 답할 수 없었다. 기록자 능력은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인데,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있다. 마치 이미 이 던전을 통과했던 자신이 남긴 기록을 읽는 것처럼. 준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집중했다. 기록자 능력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본 것을 기록한다.' 그것은 표면적인 정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정보를 읽는다.) (시스템이 숨겨놓은 데이터를 읽는다.) 던전은 시스템이다. 던전의 모든 것—몬스터의 위치, 보상금의 규모, 함정의 위치, 심지어 마나의 흐름까지—모두 수치로 코딩되어 있다. 그리고 준혁의 기록자 능력은, 그 코드를 읽을 수 있다. "준혁." 한지은의 음성이 멀어졌다. 그는 눈을 떴다. 그녀가 이미 팔을 뽑았다. 무기는 간단한 도검이었다. 분석가도 결국 전투는 해야 했다. "응. 움직여." 돌모서리를 돌자 몬스터가 나타났다. 암벽도마뱀. 몸길이 2.5미터, 회색빛 피부, 노란 눈. C급 몬스터 치고는 느릿했다. 반응 속도가 예상보다 0.3초 늦다. 준혁은 그것을 기록했다. **[몬스터 반응 속도: 예상치보다 0.3초 지연]** **[예상 원인: 마나 농도 저하로 인한 신경계 둔화]** **[약점: 측면부 비늘 사이의 관절]** 그는 한지은을 밀어냈다. "뒤로!" 검이 튀어나왔다. 준혁은 기억에 의존하지 않았다. 기록에 의존했다. 마치 이미 수천 번을 연습한 것처럼. 칼날이 몬스터의 측면부 비늘 사이로 파고들었다. 검은 액체가 흘렀다. 몬스터가 울음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상된 궤적이었다. **[전투 데이터 기록]** **[몬스터 약점 확인: 정확도 97%]** **[평균 반응 시간: 0.14초]** **[예상 승률: 99.7%]** 한지은은 입을 다물었다. 이것은 F급이 아니었다. 이것은 F급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검의 궤적은 정확했고, 발움직임은 경제적이었으며, 몬스터의 모든 반응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너..." 한지은이 중얼거렸을 때, 암벽도마뱀은 이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준혁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쁜 숨이 아니었다. 마치 가벼운 산책 후의 숨 정도. "기록자 능력을 테스트한 거야." "뭘?" "이 던전의 데이터. 나는 이미 본 것들을 기억한다고 했잖아." 준혁은 몬스터의 시체를 바라봤다. 그곳에서 빛이 피어났다. 코어다. C급 몬스터의 코어는 주먹만 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순간— **[코어 정보 해석]** **[마나 함유량: 347 units]** **[공식 보상금 책정: 85만 원]** **[실제 시장가: 120만 원]** **[편차: 35만 원 (29% 과소평가)]** 준혁은 움직였다. "이 편차가." 그는 한지은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야?" "시스템의 모순이야.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코어가 과소평가되고 있어. 그리고 그 차이는..." "최민재에게 간다." 한지은이 끝을 맺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기록자 능력은 단순히 본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니야. 시스템이 기록한 모든 수치를 읽을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수치들의 모순을—" 그는 다시 던전을 바라봤다. 초록색 이끼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더 깊은 곳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던전 심층부 감지]** **[예상 보스급 몬스터: A급]** **[보스 보상금 예상치: 5천만 원]** **[실제 시장가: 8천만 원]** **[편차: 3천만 원]** 준혁의 손이 떨렸다. 이것은 단순한 횡령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스템 자체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작의 열쇠가 자신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준혁은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두려움이.